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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음악리뷰

앨범 리뷰: 유나(Yuna) <Rouge> (2019)

 

오리엔탈리즘의 승리, 외유내강 힐러(Healer), 유나

 

 

<말레이시아 여성 싱어송라이터 Yuna의 과감한 변신>

 

 아시아 아티스트가 미국 음악 시장에서 주목받는 일은 흔치 않다. 최근 케이팝이 인기를 얻고는 있지만, 미국 대중과의 언어와 문화적 차이는 아시아 아티스트의 성공에 여전히 큰 장벽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Yuna(이하 유나)는 팝의 변방국 출신이며 이슬람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며 미국 시장에서 팝스타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현재 유나는 미국 시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아티스트일까?

 

 바이럴로 조금씩 입지를 다져온 유나는 2016 Usher와 발매한 알앤비 싱글 <Crush>가 빌보드 Adult/R&B 차트에 3위까지 오르면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랑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소극적인 여자였던 <Crush>의 유나는 지난 7월 발매된 앨범 <Rouge>를 통해 당당한 'woman in red'로 변신했다. 전작의 성과에서 얻은 자신감과 결혼을 통해 얻은 마음의 안정을 바탕으로 좀 더 자신을 들여다보며 만든 앨범이기 때문이다. 제목 ‘Rouge’는 사전적으론빨간 색을 뜻하는 프랑스어지만빨간 색은 사랑, 영혼 그리고 강인함을 의미하여, ‘한층 더 과감해진 유나라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조금은 소극적이고 무언가에 얽메여 있던 이전의 모습과 달리 스스로를 마주하는 방법의 변화를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의 변화는 보다 공격적인 앨범 제작 방식과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어진 가사로 표현되었다.

 

 전작 <Chapter>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알앤비를 주로 다뤘다면, 이번 앨범에선 전반적으로 자신이 듣고 자란 8-90년대 팝 사운드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여전히 알앤비 기조는 유지하되 디스코, 재즈, 일렉트로니카 등이 인디 포크 팝 사운드로 표현된 이 앨범에서 유나를 단순한 장르 음악가로 규정하긴 매우 어렵다.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성이 그녀의 음악에선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의 혼합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른하고 에어리(airy)한 보컬이 더해져신비롭고 이국적인 느낌이 유나 음악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주로 혼자 음악을 해오던 이전과 달리, 메인스트림에서 활약하는 Tylor the creator, G-Eazy 등 다양한 피쳐링 진을 기용하여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하고 팝 적인 면모를 강화했다. 프로듀서진은 아시아부터 미국,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포진하여 앨범의 이국적인 사운드를 팝적으로 풀어냈다. 팝의 숨은 강국인 덴마크 프로듀서 Robin Hannibal, 그리고 Selena Gomez, Demi Lovato 등 여성 솔로 팝스타들과의 작업이 많았던 Chloe Angelide가 유나에게도 팝 적인 기틀을 마련해주며 앨범의 중심을 잡았다. Little Mix, Chainsmokers와 작업한 짐바브웨 출신 싱어송라이터 Shungudzo, 그리고 ‘Me and the Moonlight’으로 호흡을 맞춰본 일본 기타리스트 Miyavi의 참여는 앨범의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주었다.

 

 

<치유된 과거를 바탕으로 한 현재의에 대한 자신감>

 

 앨범 초반부엔 한 여자로서 지난 사랑의 아픔을 치유하고 후반부엔 현재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데, 두 주제가 갖는 유기성이 흥미롭다. ‘Teenage heartbreak’ 22살의 어렸던 자신의 사랑을 흑역사로 치부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정적인 비트 위에서 일본 기타리스트인 Miyavi의 동양 풍 현악을 연상시키는 기타 연주와 유나의 팔세토 보컬이 만나치유(Healing)’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치유된 과거의 상처는 이어지는 ‘Pink Youth’에선 영국 여성 래퍼 Little Simz와 함께 여성들에게 세상에 억압에 맞서자고 외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동양은 상처를 보듬고, 자신의 일부로 재생시켜치유(Healing)’하는 반면, 서양에선 상처를제거하여치료(Treatment)’한다. Billie Eilish는 자신의 우울한 자아를 불태워버리고(‘Bury a Friend’), Taylor Swift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전 남자친구들을 디스하고 조롱한다. 메인스트림의 여성 아티스트들과 달리 다독이고 감싸는 위로의 메세지는 유나에게 동양의 신비로운 여성 아티스트라는 페르소나를 부여하여 차별성을 만든다. 유나가 미국 시장에서 신비롭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러한 치유의 개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판타지 때문이다.

 

 치유된 내면의 강인함은 팝의 변방에 있는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여성 아티스트인 자신을 드러내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Black Marquee’ ‘Forevermore’는 자신이 성장하면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영감을 준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자신의 고향인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든든한 동반자인 남편이 감독한 뮤직비디오 속의 유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멋지게 그려졌다. 특히 ‘Forevermore’는 현재 그녀가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갖는 입지를 잘 보여준다. 뮤직비디오의 유나는 앨범 제목처럼 빨간 터번과 수트를 입고 자신있게 춤을 춘다. 하지만 그 춤은 말레이 전통 춤이 아닌 팝 댄스이다. 신비롭고 나른한 알앤비 발라드를 부르던 이전의 유나에게선 상상할 수 없었던 댄스 퍼포먼스는 Sam Smith ‘How do you sleep?’ 처럼 스스로를 팝스타로 선언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 점은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과 달리 유나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자 유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팝 댄스 음악을 여성 아티스트가 하는 것은 이슬람 문화권에선 굉장한 도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비교적 이슬람 문화적 잣대가 낮기 때문에, 유나는 터번을 쓰고도 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또한 세계적인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인 펜디의 티셔츠를 입고 말레이 전통 시장을 거닐다가도, 말레이 전통 의상을 입고 사원 계단에 서 있는 유나의 모습이 교차되는 것은 현재 그녀가 최전방에서 말레이시아와 세계를 연결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말레이시아 전통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인트로 멜로디와 곡 전반에 흐르는 비트는 서구의 팝과 결합되어 말레이시아와 전 세계 양 진영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덕분에 말레이시아에서 유나는 국위선양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서구사회에선 그녀의 당당함이 좋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는다. ‘Likes’에서 토로하는 이슬람 여성으로서 느끼는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나는 미국 래퍼 Kyle의 랩을 통해 소수의 문제를 틀린(wrong)’ 것이 아닌 다른(different)’ 것으로 보다 공감할 수 있는 차원으로 끌어 올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

 

 

<Weeknd에게 Starboy가 있다면 유나에겐 Rouge>

 

 미국 메인스트림 팝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잘 발휘된 앨범이고, 그 개성의 범용성도 잘 보여주 었다. 위켄드가 본격적인 팝스타로서의 도약을 알리는 앨범으로 <Starboy>를 냈 듯, 이번 앨범은 유나에게 같은 의미를 지닌다. 모든 팝스타들은 유명해지기 전에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주목을 받지만, 팝의 영역으로 들어서면서 자신만의 색깔이 희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나는 무리하게 트렌드만 좇는 식으로 스스로를 팝스타로 몰아붙이지 않았다. 듣기 편한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을 자신만의 이국적인 사운드로 풀어내어 대중성과 개성의 조화를 이뤘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다양성 수용 트렌드에서 비주류이자 소수인 자신을 주류 시장에 당당히 드러낸 유나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라는 측면에서 케이팝 여성 아티스트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