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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음악리뷰

앨범 리뷰: 라브린느(Labrinth) <Imagination & the Misfit Kid> (2019)

 

"꿈을 팔아 돈과 명예를 얻으면 행복할 줄 알았어."

 

 

<스타와 아티스트 사이의 기로에 있던 영국의 음악가 Labrinth>

 

 대중 음악 아티스트에게 창작의 자유와 상업성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야 하는 숙명 사이의 갈등은 대중도, 제작자도 그 누구도 답을 모르는 문제이다. 영국의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인 Labrinth(이하 라브린느)는 최근 두 번째 앨범 <Imagination & the Misfit Kid>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 자신이 더 원하는 창작의 자유를 선택했고, 덕분에 자신만 할 수 있는 대체불가의 음악적 영역을 만들어냈다.

 

 라브린느는 자메이카와 캐나다 출신 부모님과 9형제들 사이에서 미국식 가스펠의 큰 영향을 받았고, 덕분에 블랙 뮤직 전반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크다. 동시에 EDM의 팬이기도 한 그는 2009년 프로듀서로 음악업계에 입문하여 Master Shortie와는 펑키한 힙합 댄스 곡을, Tinie Tempah와는 일렉트로 그라임을 작업하며 신스 사운드 사용에도 강점을 보여 촉망받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이후 2013년 아티스트로도 첫 앨범을 발매하며 영국에서 브리티시 소울(Jealous, Beneath your beautiful)과 일렉트로닉 그라임 댄스(Earthquake)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후 그는 혼란에 빠진다. 스타가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음악이 좋아서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낸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야 하는 히트메이커와 자유롭고 싶은 창작자의 기로에 선 그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LA로 가서 창작에 집중한다. 지난 7년간 자신의 음악보단 Ed Sheeran, the Weeknd, Kanye West 등 대형 아티스트들 앨범의 작곡가로, Diplo, Sia와 함께 LSD그룹 활동으로, 최근엔 영화 <라이온 킹>, TV시리즈 <Euphoria>의 스코어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해왔다. 그 과정에서 리드 아티스트일 때 보다 훨씬 자유롭게 다양한 창작 경험을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7년만에 발매한 두번째 앨범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을 보여준다.

 

 

<스토리와 컨셉을 통해 달라진 라브린느의 음악>

 

 HBOTV시리즈 <Euphoria> 스코어 프로듀싱은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넓어진 음악적 이해를 바탕으로 라브린느가 아티스트로 돌아올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은 계기가 되었다. 이 작업의 영향으로 전작과 가장 달라진 점이자 이 앨범의 잘된 점은 첫번째로 메시지의 스토리적 표현이다. 라브린느 자신의 고민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아티스트이고 싶은 자아는 꿈을 가진 아이, 상업적 성공을 좇는 자아는 사업가에 빗대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꿈을 가진 이가 부나 명예와 같은 통상적인 성공의 대가로 자신의 꿈을 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꿈이 없어진 삶은 화려하고 풍족하지만 의미가 없어진다. 앨범은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청자들에게 던짐과 동시에 라브린느 자신에겐 성공에 얽메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는 선포가 담겼다. 국내에선 아이돌을 통해 허구적 컨셉의 차용이 익숙하지만, 영미권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점은 많은 리스너와 평론가들에겐 상당히 낯설게 여겨져 이 앨범의 호불호를 가르고 있다.

 

 이러한 평가와 별개로 스토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앨범의 몇 가지 장치들은 극적인 효과를 살리도록 잘 기획되었다. 우선 인트로(Imagination), 인터루드(Juju Woman/Man, I’m blessed), 아웃트로(The Finale) 역할을 하는 트랙들을 통해 이야기 흐름의 전환을 알리며 뮤지컬과 같은 구성을 띈다. 뮤직비디오는 라브린느가 직접 컨셉과 스토리라인을 고안하여 ‘Miracle’‘Something’s Got to Give’를 통해 앞서 말한 컨셉 스토리를 드라마타이즈 하여 스토리를 시각화한다. 더불어 가사에 영화, 소설, 신화 등 다양한 소재를 차용한 것도 극적인 연출에 시너지를 준다. 성공의 허영을 마틴 스콜세지 영화 식의 파티 장면을 묘사하여 빗대었고(Like a movie), 소설 <Where the wild things are>과 슬래셔 영화 <Freddy vs. Jason>를 통해선 꿈을 잃은 아이의 모습을(Where the wild things), 그리스 로마 신화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차용하여 성공의 허영에서 구원받길 바라는 심정을(Oblivion) 표현한 것 등이 그렇다.

 

 전작과의 두 번째 차이는, 스토리의 차용으로 인해 극의 캐릭터,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이전에 해보지 않은 다양한 장르들을 시도했고, 기존 라브린느의 음악과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 그리고 이러한 조화가 신선하면서도 좋게 들리는 몇 곡은 앨범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된 60년대의 블랙뮤직인 소울, 펑크(funk), 블루스와 가스펠을 기반으로 실험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방대한 양의 전자음, 그리고 EDM과 힙합적 요소를 한 데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매 트랙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쓰였다.

 

 우선 신스는 Beyonce<Formation> 앨범 식 사운드를 통해 어둡고 불안한 감정으로 앨범의 전반적인 무드를 알리고(Misbehaving), 80년대 일렉트로 팝 밴드 Depeche Mode 사운드는 관현악기와 어우러져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승리감과 벅찬 감정을 느끼게 한다(Miracle). 그리고 Stevie Wonder‘Superstition’ clavinet과 사이키델릭한 celeste 사운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의 허탈감을 소울적으로 표현하는 등(All for us) 201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의 다양한 사운드를 곡의 느낌에 맞게 잘 사용했다.

 

 가스펠은 장르의 특징인 합창 사운드가 앨범 곳곳에 들어있는데, 특히 ‘All for us’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신의 꿈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사이의 혼란을 성가대 사운드의 다양한 변용을 통해 잘 표현했다. 자신의 보컬을 멀티 레이어드한 인트로, 곳곳에서 쓰이는 전자음처럼 변형된 화음 보컬, 의무감에 대한 가사를 말할 때 꾸짖듯이 들리는 실제 성가대의 가스펠 랩 등이 그렇다. ‘Where the wild things’ 은 단순한 합창 사운드의 사용 외에도 소울 가스펠의 6/8박자와 멜로디 전개를 오르간 신스와 자연스럽게 접목시켰다.

 

 EDM은 구성과 리듬이 주로 활용되었다. ‘Miracle’은 성가대 사운드로 시작하여 빌드업, 드랍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EDM식 구성을 따르며, 성가대 사운드로 곡을 마무리하여 수미상관적 안정감을 준다. ‘Something’s Got to Give’는 다양한 댄서블 리듬의 변주를 통해 성공의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감정을 표현한다. 전반적으로 90년대 초 유행한 하우스 곡인 C+C Music Factory‘Gonna Make You Sweat’ 연상시키는 비트와 소스들이 사용되었는데, 벌스는 디스코, 프리 코러스는 하우스, 코러스 드랍은 펑크 리듬으로 변주되어 라브린느의 보컬과 함께 James Brown의 전성기를 재연하며 마무리된다.

 

 힙합과 소울, 블루스, 펑크(funk) 등의 블랙뮤직은 비교적 새로운 음악인 힙합과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60년대 음악들이 조화를 이룬다. ‘Like a Movie’는 제목과 가사에서 유추할 수 있듯, 60년대 소재를 즐겨 차용하는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 작품 스코어를 연상케 하는 파티 풍의 60년대 소울, 블루스와 트랩 비트가 잘 어우러졌다. ‘Mount Everest’의 과도한 신스 베이스와 디스토션, 웅장한 공간감이 특징인 Kanye West의 앨범 <Yeezus>의 힙합적인 긴장감과 6-70년대 남부 소울 아티스트 Screamin’ Jay HawkinsNina Simone식 보컬 표현을 통해 성공의 정점에서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클래식과 모던의 조화로 이룬 새로운 음악적 영역>

 

 이 앨범을 통해 보여준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의 융합은 컨트리, 리듬앤블루스, 재즈를 가스펠과 접목시켜 소울의 새 장을 연 Ray Charles를 떠올리게 한다. ‘퓨처사운드로 불리던 미래지향적 전자음 기반의 유행이 지나고 클래식한 라이브 악기와 신스 사운드가 함께 쓰이기 시작한 최근의 음악적 트렌드에서 두 계열의 사운드를 가장 잘 조합한 결과물을 보여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트랙 사운드는 미니멀해지고, 멜로디가 쉬워지는 최근의 경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재즈, 소울, 펑크 등이 유행을 막 타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선 트렌드를 한 발 앞섰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이 앨범의 성과는 라브린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낸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앨범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겁진 않지만, 실험적인 시도와 동시에 기억하기 쉬운 캐치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에서 가까운 미래에 재조명될 여지가 충분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