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해리 스타일스 (Harry Styles) <Fine Line> (2019)

록스타를 꿈꾸는 아이돌,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 어딘가에 머물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아이돌 그룹 출신 록 스타, 해리 스타일스>
성공적인 아이돌 그룹 출신의 솔로 아티스트로서, 그룹의 음악과는 다른 자신만의 개성으로 그룹의 명성을 뛰어넘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기존 팬덤에게도 외면당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많은 아이돌들이 증명해왔다. 영국 보이밴드인 원디렉션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X-Factor’를 통해 2010년에 결성된 5인조 그룹으로, 엔씽크와 조나스 브라더스를 잇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아이돌이었다. 그 중 해리 스타일스는 원디렉션 내에서 여러 모로 눈에 띄는 멤버였다. 막내임에도 원디렉션이라는 팀의 이름을 지었고, 음악적 방향을 록(rock) 밴드 사운드 기반의 팝으로 주도하며 팬덤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캐릭터 측면에선 제인 말리크나 리암 페인이 마초적인 전통적 남성성을 어필하는 데 반해, 외적으로 젠더리스(gender-less) 스타일을 추구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도 확실히 규정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화, 인종적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설파하는 등 최근의 다양성 수용 경향에 부합하는 유연한 모습이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음악적으로도 가장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아이돌 출신들이 그랬듯, 다른 멤버들은 트렌디한 싱글형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찾기 위한 시도들을 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록에 집중하여 데이빗 보위를 연상케 하는 클래식한 록 앨범 <Harry Styles>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기존 팬덤의 지지 덕분에 상업적 성과가 나쁘지 않았지만, 최근 한 인터뷰에 따르면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것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다고 한다. 원디렉션으로 이룬 성공의 맥을 이어가기 보단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지만, 두 번째 앨범 <Fine Line>이 지향하는 것은 우선 대중적 성공인 듯 하다.
<록 팝의 역사를 아우르며 표현한 감정의 줄타기, Fine Line>
전작 <Harry Styles>는 아이돌 그룹 출신 솔로 아티스트가 클래식 록 스타로 전향했다는 의외성과 록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 호평을 받았지만, 놀라운 독창성이 돋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두번째 앨범 <Fine Line>은 록 혹은 팝으로 장르를 규정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자유롭게 내비친다. 그의 내면의 변화에 따라 음악을 대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자유분방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탈선하지 않는 모범적인 모습을 그간 보여왔지만, 최근 실연을 겪은 후엔 이러한 강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드러내보기로 했다고 한다. 명상, 마약을 하면서 매 순간의 감정을 극대화한 상태에서 앨범을 작업하는 실험적인 모습도 보인다. 이 점은 그간 해리 스타일스가 수 많은 미디어 노출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로써의 모습과 사생활을 분리한 신비주의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놀라운 변화이다.
제작 방법과 태도가 달라지면서 앨범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아트워크의 이미지 컨셉이다. 전작이 텀블러(tumblr) 감성의 모호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식이었다면, 이번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좀 더 명확히 한다. 프린스, 존 레논처럼 자신의 나체를 보여주는 전위적인 팝스타의 이미지나, 데이빗 보위의 수트 대신 컬러풀한 페디큐어, 페미닌한 진주 목걸이, 오페라 글로브, 발레 수트를 입고 취하는 역동적인 포즈와 표정은 해리 스타일스만의 자유로운 젠더리스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 점은 강화되는 다양성 수용 트렌드와 결을 같이한다는 면에서, 해리 스타일스가 단순한 록 아티스트를 넘어 시대적 아이콘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메시지와 가사의 경우, 섹스와 슬픔을 주제로 앨범 단위의 메시지적 유기성이 생겼다. 초반엔 사랑의 기쁨을 말하다가 ‘Lights Up’을 기점으로 이별의 아픔을 토로하며, 후반부에선 지난 사랑을 추억하며 앨범 제목 ’fine line'(미세한 차이)처럼 기쁨과 슬픔 사이 어딘가로 흐름을 전환하며 마무리한다. 대부분의 트랙들이 해리 스타일스의 개인적인 연애 경험에 기반한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의 흐름을 따르는 구성 덕분에 자전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가사도 그렇다. 리드 싱글인 ‘Adore You’와 ‘Lights Up’은 성 정체성이 모호한 화자와 청자의 가사 표현과 뮤직비디오가 어우러져, 청자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다. 전작에서 크게 돋보이지 않았던 가사들과 비교하면 창의적인 발전이다.
이 앨범에서 가장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그려내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한 사운드 프로덕션이다. 최근의 팝은 사운드 개별의 질감보단 과도한 리버브와 에코로 전체 분위기를 몽환적으로 구현하는 식으로 음향이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앨범 역시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최근의 기법을 취하지만, 다양한 보컬 표현, 그리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운드의 믹싱을 통해 동시대 청자들이 기존에 들어온 트렌디 팝과 다른 즐거움을 주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우선 보컬은 다양한 창법을 통해 각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Golden’에서 성숙한 로우 톤과 다양한 음역대의 팔세토 콰이어(Choir)가 대비되어 사랑의 시작의 환희를 극대화한다. 평소 보여주었던 힘있고 거친 고음으로 ‘Falling’의 절망감을 표현하는가 하면,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새롭게 들리는 ‘Cherry’의 건조하고 나른한 보컬은 지난 사랑을 달콤 쌉싸름하게 추억한다.
기타 음악의 시대였던 60년대와 스테레오의 등장으로 전성기를 맞았던 70년대 록 팝의 사운드를 사용하고, 믹싱 기법을 부활시킨 것은 이 앨범의 기반이 '록'임을 그나마 가장 잘 보여준다. 모든 소리마다 각 음역대와 영역을 충분히 확보하고 위치 배치를 달리하여 선명하고 듣기 편한 소리로 현재의 팝 음악과는 차별화된 음향을 보여준다. 특히 후반부의 기타 잼이 인상적인 블루스 곡 ‘She’는 악기 사운드를 살리기 위해 보컬이 앨범에서 가장 뒤로 빠져 있고, 지미 핸드릭스가 그랬듯 소리의 좌우 출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피드백 효과까지 살려 록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음향적 입체감을 구현하여 동시대 청자들에게 색다른 음향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21세기형 록스타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앨범>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의 명성과 별개로 포크 팝을 통해 자신만의 업적을 만들었 듯, 록스타가 되고 싶은 열망은 잠시 내려놓고 팝 적인 감각을 발휘하여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 나가려는 의도를 잘 보여준 앨범이다. 2019년 발매 작 중 세 번째로 높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것에 비해 음원 성과가 좋지는 않지만, 원디렉션 시절부터 발전시켜온 팝 적인 작법과 트렌드 안에서 록(rock)을 녹여 낸 이번 앨범과 같은 방향이라면 조급하게 대중적 성공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힙합이 차트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잠시나마) 줄세우기도 해보고, 'Adore You'와 같은 곡은 순위가 꾸준히 상승 중이라는 것만으로도 매우 괄목할만한 성과이다. 무엇보다도 본인의 젠더리스적인 캐릭터에 어울리는 인디 록을 팝과 결합시킨 창의성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물이 현 시대의 흐름과도 잘 맞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적 아이콘의 탄생을 예고하는 앨범이다. 록과 팝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서 성공한 이 앨범은 훗날 그가 온전하게 하고 싶은 록으로 전향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